나주 폭설주의보

슬픔과, 슬픔을 감추려는 웃음의 기묘한 조화

제가 다니는 회사는(요즘 매스컴에 자주 오르지요)직원들이 모회사에서 팀이동을 통해서 옮긴 회사라 분위기가 아주 가족적입니다. 직원들 집에 숟가락 몇 벌 있는지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지난 일요일 같이 근무하는 직원의 부친이 급작스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직원이 모두 준비해서 전남 나주로 다함께 내려갔습니다. 회사는 한명이 남아서 지키고 말입니다.

서울을 출발해서 수원쯤 가다가 급한일이 생겨 다시 서울에 갔다가 다시 나주로 갔습니다. 출발할 때 내리던 눈이 광주 톨게이트에서는 거세지더니 나주에 가자 폭설 주의보로 바뀌더군요. 제차는 4륜구동인데도 미끌어질 정도니 다른 직원차들은 거의 정차 상태입니다.

우리가 갔을때는 비통함이 계속 유지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고인의 자제및 여러 지인과 친지들이 몰려드는 손님을 맞고 잠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비통함을 감추는 웃음을 짓고 군데군데 큰소리가 나던 분위기 였습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계속 되다가도 망자에 대한 추억이나 아쉬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유가족은 다시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왁자지껄 해지곤 하더군요.

다음날 발인해서 장지까지 가는데 정말 엄청난 눈보라가 치더군요. 망자가 동네를 떠나기 섭섭해서 그렇다는 말에 유가족중 따님부터 시작된 눈물이 주위에 둘러선 지인과 동네 분들에게 전달되고 심지어는 상여를 지휘하는 노인의 눈에서마저도 눈물을 훔치게 만들더군요.

상주는 같이간 직원들에게 밤을새워 효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서울로 향하는 우리에게 한 번 더 강조합니다. "부모님께 자주 연락드리고 찾아뵈라. 난 너무 섭섭하고 후회된다."
상주의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상주가 하는말이 가슴을 통해 전달 됩니다.

다시 눈보라를 뚫고 광주까지 나서자 언제 그랬냐는듯 짬짬이 햇빛도 보입니다. 정말 망자께서 평생 사시던 동네를 떠나시기 싫으셨던 모양입니다.

휴게소에 들러서는 불현듯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어리광을 피웠습니다. "엄마 별일없지? 나 이번주에 가니까 맛있는거 많이 해줘~"

언제까지 어리광을 부릴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렇고 싶습니다.

by 밤안개 | 2004/01/14 13:32 | 운벽이야기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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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영화, 음악 그리고... at 2004/09/13 11:32

제목 : 오산 [호우주의보]
토요일 오후 장모님 생신잔치로 처가에 있는 제게 회사 동료가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의 내용은 부고를 알리는 것이었죠. 저도 이제 부고를 듣는 전화의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걸 보니 인생 3막에 들어가지 싶습니다. 고인은 저.....more

Commented by apostle5 at 2004/01/14 16:24
휴우~ 저도 이번주에는 부모님께 어리광좀 부리고 해야겠습니다~
자라면서 어리광이란걸 별로 부려본적이 없어서...어머니는 그게 좀 불만이라 하셨었는데...
Commented by alex13 at 2004/01/14 17:51
후후 꼭 해보세요^^; 어리광 부린 이야기 써주시고요~
Commented by ournature at 2004/01/28 18:59
풍수지탄입니다....

살아실제 섬기길란 다하여라 는 말귀가 님의 글을 보고 다시 떠오릅니다...

영빈이를 봐주고 계시는 어머님을 오늘은
전혀 다른 마음으로 다시 뵈야겠습니다.
오래전엔 어머니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났었는데...

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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